우리가 바람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면

작성자: 김선아님    작성일시: 작성일2023-02-25 13:24:50    조회: 181회    댓글: 0
 

 

 

우리가 바람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면                   김선아(2. 12 말씀 묵상)

 

   친절을 결심한 순간이 있습니다. 봄날처럼 푸른 어른의 문턱을 넘어 첫발을 내딛고는 꽤 분주하게 살았던 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조금의 보람과 고단함을 뒤섞어 걷다가 커다란 소리에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저만큼이나 어려 보이는 배달 기사였어요. 지금이야 배달 대행업체가 있지만, 그때는 가게마다 배달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바람에 수거한 잔반통에서도 음식물이 쏟아지고

배달해야 할 음식도 망가졌지요.

 

  급하게 전화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에, 안타까움 반 호기심 반에 근처 정류장에 멈춰 앉았습니다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게 어떻게 되어갈지는 궁금해서 말이지요. 이내 도착한 다른 배달 기사는 같은 

식당의 직원이 아니라 왜인지 다른 어느 곳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처럼 보였어요. 새로 들고 온 음식을 주고

함께 길에 떨어진 음식물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고 그저 그렇게 생각했어요.

 

  당황하고 막막한 그때, 손 내밀 곳이 일하는 곳이 아니라 근처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똑같이 어린 친구일 

뿐이어서 애잔함을 느꼈던 그때, 앞으로 내가 그릇이 회수되어야 할 배달 음식을 주문해 먹게 된다면 항상 

깨끗하게 씻어서 내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처음으로 어른의 결정을 한 것 같아서인지 참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순간이에요. 요즘은 일회용 그릇이 대부분이라, 언젠가는이런 다짐도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아도, 내 마음을 따르게 되는 게 사람의 본성이라, 후회하면서도 자기가 싫어할 선택을 

한다고요. 착한 사마리아안의 자비는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그리스도인이 친절해야 하는 이유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따르고 싶고 선을 행하고 싶지만 싫은 선택을 나 자신의 마음을 따라 반복하는 후회 가득한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요. 끝까지 책임지는 자비를 보였던 사마리아인처럼, 율법과 혈통, 출신과 조건을 따지지 말고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픈가에만 집중하여 바라보면 내가 해야만 할 일을 알게 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 친절과 

자비라는 말씀에 나의 친절이 퍽 편협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다시 깨닫고 다짐합니다.

 

  그럴만한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충분히 친절할 수 있어도, 상황과 조건을 순식간에 계산할 수 있는

관계있는 이들일수록 친절을 한발 뒤로 아껴 놓거든요.후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품을 닮아가는 게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나의 자유를 위해 친절해야 한다고 좀 더 편협하지만 선하게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더 노력해야겠지요. 내 삶의 끝자락에서는 나 이 정도면 충분히 친절하지 않았나 

자랑할 수 있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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