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사는 우리에게

작성자: 김선아님    작성일시: 작성일2020-02-07 10:51:26    조회: 620회    댓글: 0
 

투박한 발자국을 따라 사분사분 걸어가 보면 그 글이 놓인 길이 어딘지 애잔하고 정갈하여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동화책을 만났습니다. “그해 가을이라는 책이었어요. 권정생 작가의 산문을 옮겨 그린 동화책은 내내 아릿하고 묵직해서, 마지막 장에서는 하는 콧소리를 내며 덮었지요. 예배당 문간방에서 조용히 더부살이하며 글을 써 내려가던 청년이 만났던, 울 줄 모르는지체 장애에 지적 장애가 있는 소년, ‘창섭. 가난함을, 외로움을 닮아 서로 통할 만한 사이였지만 청년은 자신의 처지를 거울에 비춘 듯 닮은 창섭이를 내심 반기지 않았습니다.

 

늘 익숙하게 창섭이를 밀어낸, 모두가 그랬듯이. 배가 아픈 건 옷을 잘 여미지 않은 네 탓이라며 밀어낸 다음 날, 아이는 죽어버리고 그해 가을빗줄기를 한발 비켜서 들어와 한숨과 함께 뱉어낸 그 말, “서새니도 냉가 시치(선생님도 내가 싫지)?”라는 아이의 말이 내내 귀에 내려앉아, 낡은 책 위로 기어가는 벌레 한 마리도 쉬이 잡아챌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한 마리의 벌레라 할지라도 살아있는 건 더없이 고귀하다.”는 단상을 던지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후회와 미련처럼 그득 붙어 자신을 괴롭힌 연민을 고백합니다.

 

너를 받아들이는 건 나의 초라함을 받아들이는 일이어서,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너를 걱정하는 건 너처럼 나도, 사무치도록 외로워 서로 손을 잡았고 그것은 비슷한 이들끼리 위로되려 모였다는 걸 온 세상이 알도록 고백하는 것이어서, 그런 초라한 내가 싫어서, 네 손을 잡지 못했었다고. 나는 네가 아니라 내가 참 못나서 싫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작은 벌레에서도 너를 떠올리게 되었다고.

 

그의 아픔을 알 것 같습니다. 그의 마음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길고 짧게, 우리에겐 모두사랑에 있어서, 한 걸음 내딛는 용기에 있어서 실패한 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나는 그저 마음을 추스르고, 정리하고, 누구나가 그럴 만한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고 여겼지만, 당신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었거든요.

 

손 내밀기 싫어질 때, 그러니 그 이유마저 타당할 때 기도해야지요. ‘하나님, 제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제가 제 허물을 인정할 수 없어서 지금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구하는 이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 부족한 저를 지혜롭게 하셔서, 다시 손 내밀어 사랑할 수 있게 하세요.’

 

예수 믿으세요, 당신의 사랑에 포기가 없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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