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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없는 제사 (출애굽기 29:1-18)

작성자: 채철님    작성일시: 작성일2022-12-26 20:28:38    조회: 202회    댓글: 0
흠 없는 제사 (출애굽기 29:1-18)
2022. 11. 9(수) Q.T

♥ 찬송 : 86장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 본문 : 출애굽기 29:1-18
1.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
2. 무교병과 기름 섞인 무교 과자와 기름 바른 무교 전병을 모두 고운 밀가루로 만들고
3. 그것들을 한 광주리에 담고 그것을 광주리에 담은 채 그 송아지와 두 양과 함께 가져오라
4.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5.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정교하게 짠 띠를 띠게 하고
6.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거룩한 패를 더하고
7. 관유를 가져다가 그의 머리에 부어 바르고
8.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9.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 그들에게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
10.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
11. 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고
12. 그 피를 네 손가락으로 제단 뿔들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제단 밑에 쏟을지며
13. 내장에 덮인 모든 기름과 간 위에 있는 꺼풀과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을 가져다가 제단 위에 불사르고
14. 그 수소의 고기와 가죽과 똥을 진 밖에서 불사르라 이는 속죄제니라
15. ○너는 또 숫양 한 마리를 끌어오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16.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 피를 가져다가 제단 위의 주위에 뿌리고
17. 그 숫양의 각을 뜨고 그 장부와 다리는 씻어 각을 뜬 고기와 그 머리와 함께 두고
18. 그 숫양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 묵상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통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위임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무엇일까요. 1절 “네가 그들에게 나를 섬길 제사장 직분을 위임하여 그들을 거룩하게 할 일은 이러하니 곧 어린 수소 하나와 흠 없는 숫양 둘을 택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린 수소 하나는 속죄제를 위한 제물이고, 흠 없는 숫양 둘은 각각 번제와 화목제를 위한 제물이 됩니다.

특별히 이 제물은 흠 없는 것이어야 했는데 성경에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흠 없는 제물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왜 이렇게 흠 없는 제물을 말씀하실까요. “흠이 없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속죄와 화목제물은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구약의 제물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흠 없는 제물은 인간의 완전한 속죄, 하나님과의 완전한 화목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런 영적인 의미는 깨닫지 못하고 당장에 유익, 지금의 풍요만을 욕심 낸 나머지 하나님께 가져 오는 제물들은 온통 부러지고 병들고 상한 제물들만을 골라서 드리곤 하였습니다. 삶의 우선순위가 자신들의 삶에 있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흠 없는 제물을 드리는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입니다. 왜 그럴까요. 완전한 제사는 완전한 구원, 완전한 평안의 삶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제사는 완전한 믿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흠 없는 예배”를 원하시지 않을까요. 로마서 12:1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성경은 우리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몸이, 내 삶이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의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피곤하지 않으면, 내가 쓰고 싶은 시간 다 쓰고 좀 남으면, 당장 내가 급하고 필요하고 중요한 일에 나의 에너지를 쓰고 그리고 좀 남으면 하나님께 예배하겠다는 생각, 그리고 남으면 기도하겠다는 태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흠 없는 제물일까요. 어쩌면 그것이 그 옛날 병들고 부러지고 상한 “흠 많은 제물”을 가져 왔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무엇이 다를까. 돌아보게 됩니다.

예배란 삶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삶이 희생되어야 예배가 온전해 집니다. 나를 희생하지 않으면 내 시간을 희생하지 않으면 나의 것들을 희생하지 않으면 예배에 흠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예배가 어렵고, 은혜 없고 따분한 찌꺼기 같은 시간이 되어 버리지 않을까요.

예배의 경이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구원의 은혜가 내 삶을 충만하게 채우지도 못하고, 그럼에도 예배는 늘 무거운 멍에처럼 나를 짓누르게 됩니다. 같은 예배, 같은 기도, 같은 묵상인데 왜 누군가에게는 하늘의 평안과 위로와 은혜가 충만하고 누군가에게는 메마르고 답답한 것일까요.

저는 책을 한 권 읽어도 어디서 공짜로 얻은 책이랑 제가 돈을 주고 사서 읽는 책이 다릅니다. 돈이 많을 때 옷을 사는 것이랑, 땀 흘려 번 돈으로 모으고 모아서 옷 한 벌 사는 것이랑 고르는 시간부터가 다릅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스마트 폰으로 무료 영화 보는 것은 감동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희생하였기 때문입니다. 피 같은 대가를 지불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덜 피곤할 때, 다른 일이 없을 때, 시간이 될 때 예배하는 것과 피곤한 눈 비비며 일어나서, 그래도 시간을 쪼개고, 그래도 바쁜 일상을 미루고 예배의 자리에 기도의 자리에 달려오는 간절함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럴까요. 나를 희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흠 없는 예배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인 줄로 믿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보 같은 짓 가운데 그야말로 최고봉은 항상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지금 바꾸지 않고 변하지 않는 똑 같은 일상을 살면서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희생하지 않으면 지금 내 몸이 거룩한 산제물이 되지 않으면 나의 예배는 나의 기도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흠 없는 예배”를 다짐하시고 오늘, 주님 안에서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 함께 기도해 주세요.♥
① 예배하는 교회, 선교하는 교회, 훈련하는 교회, 섬기는 교회 되게 하소서
② 온 성도들이 하루의 묵상(Q.T)으로 경건하게 하시고, 은혜가 충만하게 하소서.
③ 직분자들과 봉사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더하시고 기쁨으로 충성 봉사 헌신하게 하소서.
④ 어떤 형편에도 감사를 발견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소서.
⑤ 온 성도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에 형통의 복을 주시고 삶의 필요를 채워 주소서.
⑥ 믿지 않는 가족들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소서.
⑦ 근심과 염려 속에, 질병과 가난에 허덕이는 성도를 위로하시고 하루 속히 회복케 하소서.
⑧ 우리 미래 학교 아이들이 말씀으로 양육되고 섬기는 교사들에게 은혜를 주소서.
⑨ 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고 지도자들을 지혜롭게 하시며 도덕적인 성장이 있게 하소서
⑩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로하시고 하루 속히 치유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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