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하지 않아도 식물을 썩 잘 길러내는 친구가 있습니다. 작은 베란다 한가득한 초록이들을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다 보면 말이지요, 친구는 참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해요.
“그냥, 잘 컸어. 나도 모르는데 그건, 왜 그런 거야? 물을 많이 줬나?” 하고 퍽 성의 없는 대답을 하지만, 느른한 듯 둥글둥글한 성품에, 그보다 더 다정한 말투를 듣고 있노라면 그 성품 자체가 주변을 여유롭게 만들어서… 그 모습 때문에라도 초록이들이 느긋하게 제 속도대로 자라갈 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서, 마주 웃게 만드는 그런 친구에요.
오랜만에 들른 베란다에는 가지가 숭덩숭덩 잘려나간 제라늄이 있었어요. 이거 왜 이러냐고, 이대로 죽는 거냐고 묻는 제게 ‘삽목’을 하느라 가지를 좀 쳤다고, 삽목한 가지들은 뿌리도 다들 잘 내려와서 오늘 작은 화분에 다 옮겨 심었노라고.
“그럼 이건 이제 어떡해? 이대로 죽는 거야?” “걔? 놔두면 살아”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친구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지도 이파리도 하나 없이 이렇게 숭덩숭덩 잘라놓은 게 어찌 살 수 있냐고 타박했더니, 느긋하게 대답합니다.
“뿌리는 살았잖아”라면서요. 정말이더라고요. 뿌리 빼고는 아무것도 없던 제라늄이, 퍽 오랜만에 가보니 다시 이파리를 빼꼼, 신기하게도 다시 자라보려고 아주 작게 빼꼼… 내민 그 순이 예쁘고 고와서 소리 높여 감탄했어요.
아, 너는 희망이구나. 다 죽어버린 줄 알았던 너는 어느새 언제라도 다시 자라날 준비를 하는, 아무것도 없는 듯 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귀하고 강한 것을 품고 있는… 너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구나. 시들다가도 끝내 이겨내고, 꾸준히 그 안에서 생명을 순환하는 그 꽃은, 우리를 닮았습니다. 사람은 언제나 죽음을 향해 살아도 그 삶을 사랑으로 피워내지요.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우리는 늘 희망을 찾아 걸어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마음이기에, 그것이 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보이지 않아도 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나도 모르는 새 따라가는 것처럼, 꽃은 피어나겠지요.
예수 믿으세요, 삶이 메마른 듯 보여도 당신은 그 안에서 새롭게 피어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