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필기구를 좋아해요, 꽃처럼 보기만 해도 설레고 필요하다기보다 갖고 싶고 그래서 뭘 사지 않아도 문구점에서 한참이나 방황하듯 구경하러 갔다가 어느새 하나, 둘 모으게 된 펜과 연필, 어느 땐 수첩, 또 노트들이 제 보물상자 안에 든든하게 들어차 있어요. 여느 때처럼 써 내려가던 글씨가 막히더라고요. 분명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설마 하는 생각에 몸체를 열어보니 어느새 잉크는 없고 빈 통만 덩그러니 남았어요. 몸체가 투명하지 않아 다 써가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갑자기 이별할 줄은 몰랐던 그 펜을 보며 중얼거렸어요.
‘이제 뭘로 쓰나, 가득 찬 필통 속에서도 딱 너 하나만 들고 다녔는데 그저 너 하나만 내 손에 딱 맞았는데 말이야. 너 고생했다 싶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못쓰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내가 너 너무 좋아했나 보다. 너무 좋아해서 계속 들고 다니고 너무 좋아해서 너만 쓰느라 너 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붙들었었나 봐. 다른 게 많아도 그저 너 빈 자리만 크다.’ 펜은 펜으로 잘 살다가 떠난 거지요. 주인이 많이 아껴줬고, 잉크가 굳어지지도 않고 모두 글로 남고 떠났으니까요. 그 난대로의 소용을 다 했고, 그래서 더는 펜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그를 통해 정리한 많은 것들이 고스란히 주인에게는 남았으니까요. 그러니, 꼭 그처럼 나도 남았으면 좋겠다고… 내 삶의 시간 시간으로 쓴 이야기가 나의 하나님께는 참 좋은 것이었으면 한다고. ‘아휴, 벌써 끝나버려서 아쉽구나. 잘했다, 정말 잘했어. 네가 살아온 게 참 예쁘고 좋았고, 아주 오래전부터 널 꼭 안아주려고 기다렸어. 수고했어, 정말.’이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고.
그러니까 잘 살려고요. 내 삶의 귀결이 오직 하나님께로만 닿길 매 순간 매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해서, 잘 살아갈게요.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 앞에 ‘보기 좋은’ 삶을 살아갈게요, 꼭 그렇게 주님 앞에서 하루 하루를 매듭지어 갈 수 있게 제게 부족한 것을 헤아리는 지혜를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주세요, 주님.
예수 믿으세요, 당신의 삶을 기쁨으로 받으시기 위해 삶을 인도하시는 그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