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꽃이 필 수 있길 글/김선아(8.15 말씀 묵상)
설렘이 사라지고 순수의 마음이 옅어지면 권태가 찾아옵니다. 익숙함에 속아, 바라야 하는 것을 쉽게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고 세웠던 교회가, 그 수고를 배신하듯 교묘하게 서로 헐뜯는 모습만 남았을 때, 사도 바울은 편지를 써 내려갔지요. 그가 풍부한 은사를 적절히 쓰지 못하는 고린도 교회를 보며 드러낸 마음은 서운함과 비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실망과 질책 대신 하나님이 바라시는 마음으로 실수하고 있는 성도들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만나 나의 신분과 지식, 율법의 의가 ‘쓰레기’로 여겨졌던 순간을 잊지 않아서요. 이런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에 늘 감사해서… 이런 나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들렸을 때, 사랑의 증거가 되고 상처 입은 이를 치유하는 힘이 되어서, 너도 할 수 있다고… 나의 교만과 욕심, 상처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만나고 나서야 쓰레기가 아닌 사랑의 지표가 될 수 있었다는 첫 마음을 잊지 않아서랍니다.
언젠가 저는 제 교만과 지식으로 마땅히 감싸주어야 할 사람을 감싸주지 못했습니다. 판단과 정죄함으로 손가락질할 때, 나를 향하여는 더 많은 손가락을 접었으면서도 내가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내가 말뿐인 사랑을 외칠 때, 내 곁에서 더 외롭게 사그라들었던 영혼이 있었음을 알았지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나의 실망과 질책을 과하게 표현했던 것은 이런 나에 대해 참아주셨던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부족함과 상처를 돌보신 하나님을 잊었기에 쉽게 비난했습니다. 나의 약함을 영화롭게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를, 나의 실수를 끊임없이 용서하셨던 포기 없는 사랑이 어떻게 찾아왔는지를 잊어서요. 상처가 있어서,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앞으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며 쉽게 관계를 잘라냈어요. 하나님께 받은 건 고맙지만, 그렇게 살려니 까마득하다며 잘라냈던 거지요.
하지만 이제는 고린도 교회를 안쓰러워했던 사도 바울처럼, 언제나 내 곁에서 기다리시고,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시선 그대로 내 곁을 둘러보길 원합니다. 모든 연약함과 교만, 욕심이 하나님을 만나 치유되고 사랑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나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바라고, 소망하겠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그분의 사랑 안에서만 우리에게 있는 씨앗을 피워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