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두고 걸었습니다.

작성자: 김선아님    작성일시: 작성일2020-11-14 21:28:51    조회: 539회    댓글: 0
 

얼마 전 읽은 그림책 중에, 우연히 주운 책을 들고 다니며 가짜 지혜를 뽐내는 암거위에 관한 것이 있었어요.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라는 주인아저씨의 말을 기억하고는, 정말로 기회가 생겼을 때 지혜로워지기로 한 거지요. 주인공, 피튜니아는 책을 날개 밑에 끼고 다니며 애지중지 아끼기만 합니다. 그렇게만 들고 다녀도 퍽 지혜로워 보였어요. 농장에서는 말이지요.

그가 지닌 책이 그의 얼굴을 높여 주었고 그의 말에 힘을 더했습니다. 동물들은 피튜니아에게 해결책을 구했고, 그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실을 해석했습니다. 그 말의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말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폭죽 상자에 모여든 동물들이 피튜니아가 그 상자 안에 사탕이 들어있다고 말하자 모두 달려들었거든요. 와락 달려들어 상자 안에 있던 폭죽을 낚아채 가고, 굉음과 함께 폭발해 버립니다.

그렇게 목장은 엉망이 되어버리고, 피튜니아의 교만과 지혜는 폭죽과 함께 날아가 버렸지요. 암거위는 흘끗, 내려다본 책을 단 한 글자도 읽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혜는 날개 밑에 지니고 다닐 수는 없는 거야. 지혜는 머리와 마음 안에 넣어야 해.”라며,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어요.

퍽 사랑스러운 이야기지요. 실수, 허세, 그리고 그 부끄러움까지, 참 좋더라고요. 나 같아서 말이에요. 아무것도 읽을 수 없음에서, 지혜를 머리와 마음에 넣지 않은 채 날개 아래 넣는 것으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거위의 마음이 참 귀한 선물 같지요. 터져버린 폭죽 같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나 이렇게 낮아질 수는 없지요. 누구나 이렇게, 당연한 듯 방향을 바꾸어 걸어가지는 않으니까요. 비어버리고 황량한 마음에만 하나님이 담길 수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담담히 걸어가지는 못하니까요.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음은 알아도, 내가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은 따뜻하고, 안락한 품 안에 안긴 채로는 볼 수 없으니까요. 온 마음을 감싸는 위로를 기억하며, 걸어가야 합니다. 힘들 때마다 또, 지칠 때마다 나의 날개 아래 숨겨둔 위로를 매만지며 조용히 또 걸어야만 광야의 끝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요. 하나님 앞에 다가갈수록, 나의 부족이 더 선명해지니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부족할지언정, 불쌍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당신께 갈수록, 나는 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당신의 위로가 넉넉하여, 어느 순간 나의 상처가 더이상 중요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았다며 이해가 되었고, 그 덕분에 당신을 만났고, 뒤돌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의 광야에 퍽 사랑스러운 꽃을 심고 있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당신의 사막에 물길을 내시고, 꽃을 틔우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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