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98년 9월 가정교회사역을 시작한 후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긴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행복하고 감사했던 시간이 더욱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처음 담임목사님께서 안식년을 마치고 오셔서 당시 구역장들에게 가정교회에 대한 비전을 말씀하셨을 때 기대와 설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부담감이 말할 수 없이 컸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 부담감이 무엇이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일반 성도들이 하는 것처럼 목회자가 편안하게 먹여주는 대로 신앙 생활하면 되는데 왜 평신도인 내가 목회자가 해야 할 사역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헌신에의 두려움과 부담감이 이유였던 것 같다. 또 다른 이유는 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부부가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한 걱정, 즉 아내에게 감추고 싶은 모습도 있고 또한 자신의 모습과 가정을 타인에게 100% 드러내 놓아야 한다는 부담감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부담감을 안고 3개월 동안 비전 세미나와 목사님의 말씀과 개인적인 묵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사역을 감당하라고 명령하셨고 지금까지 이 사역을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 가정교회는 ‘다드림 가정교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좌충우돌하며, ‘내가 왜 이 사역을 한다고 했을까?’라는 의문도 많이 들었던 시절입니다. 때로는 가원들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적도 많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나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투병할 때, 가정적으로 너무나 힘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치 자기의 일인 것처럼 기도하고 도와주려는 가원들의 따뜻한 사랑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오해를 사, 오랜 기간 서로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도 있었지만, 평신도 사역의 기쁨과 감격을 가장 크게 체험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 후, 여러 번에 걸쳐 분가와 파송을 거듭했습니다. 함께 가정교회에서 섬겼던 많은 분들이 가장이 되어 가정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그들이 모두 나보다 훨씬 가정교회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 기회가 주어질 때까지 이 사역을 하기를 원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지 모르지만, 온전히 쓰임받기 위해 오늘도 나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길 원합니다.
-『내가 꿈꿔왔던 소그룹』, 주뜻대로가정교회, “내가 왜 이 사역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