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아야 예쁘다

작성자: 김선아님    작성일시: 작성일2019-12-22 15:28:46    조회: 670회    댓글: 0
 

오랜만에 외할머니댁을 찾았어요. 김장했다며 와서 가져가라고 틈틈이 연락하셔서 미루고 미루다가 참 가깝지만 자주 가지 않아 먼 곳을 훌쩍 다녀왔어요.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서 소리 높여 말하고, 또 알아듣는 것도 시원치 않아 절반은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았지만 어쩐지 마음만은 한없이 편하고 재미있는 시간.

 

엄마가 할머니를 닮았겠지만, 우리 엄마 닮아서 더 친근하고 재미있는 할머니는 그날도 손녀딸에게 사 줄 것이 한가득 있는지, 냉장고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여기저기를 뒤적이며 서성였어요.

, 이것도 가져가라. 이거는 얼마 전에 담근 거라, 밖에 좀 내뒀다 먹어야 해. 아주 맛이 잘 들었지?” 또 한 상 가득 반찬을 들이밀며 먹을 게 없어서 어쩌냐는 둥, 차가 막히기 전에 빨리 가야 하는데 라면서도 더 챙겨갈 게 없나 뒤적이는 여전한 모습에 웃음이 났어요. 그러면서도 그건 썩었잖아! 하지 마!”라면서, 내내 익숙하게 툭탁거리며 미련을 못 버려 먹을 수 있다고 계속 챙겨주고 싸 주려는 할머니에게 헛웃음을 지었지요. 그러다가 그냥 다 싸라고 다 챙기라고 손을 내 저었고, 그렇게 가져와서는 썩어버린 밤, 사과, 장아찌들을 죄 정리해 버리고, 또 김치는 잘 정리해 두면서 훌쩍 떠나가는 차에 대고 내내 손을 흔들던 할머니를, 증손녀 재롱에 또 웃음꽃 담뿍 피어나던 얼굴을 떠올렸어요.

 

새끼들 주려고 고이고이 아꼈는데, 한창 맛날 땐 오지를 않아 벌써 썩어버린 과일들 반찬들미련이 그득그득해서 할머니는 버릴 수 없어요. 그 자리에서 정리해 치워주면 이내 돌아서 다시 꺼내올까, 혹 미련을 주워 담는 수고를 구태여 더할까 봐서 마음은 가지려고 말이에요. 나 생각해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은 잘 가지고, 못 버리는 것도 병이라 타박하지 말고, 그냥 다 맛있었고 다 잘 먹었다고 이야기해 주고 다음에도 싸주고 싶은 거, 다 내가 가져와야지 생각했지요.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마도 할머니가 내 엄마는 아니어서일 거라고, 다리 하나를 더 건너 그저 좀 더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거리감이 있어서라고. 그렇게 좀 멀리서 봐야만 어여쁘게, 사랑스럽게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딸이라서 안되는 것들을 손녀가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이에요.

 

예수 믿으세요, 사랑할 수 있게, 사랑을 위해 당신의 마음을 적절한 곳에 놓아두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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